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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맛있는 이야기

맛있는 이야기 - 평양냉면 #1 (추억편)

by 방구석 딴따라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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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물냉면을 무척 좋아했었다.

특히,

차가운 육수가 식도를 내려가고 난 뒤 1.2초 정도쯤 뒤늦게 혀에서 느껴지는

육향의 그윽하고 담백한

아주 살짝 예전 병에 담겨 나온 서울우유의 뒷맛같은

오묘한 비린맛을 즐겼었는데,

혹자는 MSG맛이라고 평가절하 할 수도 있겠지만은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신 '고향의 맛'냉면에선

그 느낌은 절대 안났고 대신

파블로프의 개처럼 인자한 미소의 김혜자 배우님의 건치미소만 되새겨 질 뿐이였으니

우유맛 냉면이 '고향의 맛'이 아닌것 만은 확실하다.

https://cjnews.cj.net/heritagelibrary/cj-1953/since-19531980%EB%85%84%EB%8C%80-%EC%87%A0%EA%B3%A0%EA%B8%B0-%EB%8B%A4%EC%8B%9C%EB%8B%A4-tv%EA%B4%91%EA%B3%A0-%EC%86%8D-%EA%B9%80%ED%98%9C%EC%9E%90-%EB%B0%B0%EC%9A%B0-%EB%AA%A8%EC%8A%B5/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고..

고깃집의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누군가는 물냉을

누군가는 비냉을 시킬때,

어떤 선배가 "남자는 비냉이지~"라는 젠더감성 제로의 밑도 끝도 없는 권위의식 팽배한 멘트를 던질때에도

난 어김없이 "전 물냉 먹고 싶어요"를 당당히 외쳤더란다.

물론,

남자(?)가 되고 싶어 가끔 시킨 비냉은

내 입맛에 맞지 않았고 특히

만성 축농증으로 고생하는 내 코와 매운음식은 상극이였으므로

난 남자를 포기하고 여성스러운(?) 내 입맛을 받아들여야만 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2002년으로 기억되는데

뮤지컬 공연 연습을 끝나고 간 마포의 주물럭가게에서의 회식자리에서

인생 냉면을 만나게 된다.

고깃집에서 끓인 육수로 만든 냉면은 이런 맛이구나..

술기운인지 고기기운인지를 더해

내가 그렇게도 찾던

'식도를 넘어간뒤 1.2초 후에 느껴지는 병에 담긴 서울우유맛이 미세하게 느껴지는'

그 맛이 여기 있었네!!

그동안 내가 먹었던 냉면은 냉면이 아니였구나

아니 진짜로 우유를 넣은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런 진한 육향의 주물럭집 냉면

물론,

그 냉면도 식초와 혜자스러운 MSG가루는 들어갈것이므로

고깃집 냉면의 프리미엄 버젼정도였겠지만

비냉보다 물냉을 좋아하는 나는 그 뒤부터 그 맛을 찾아 다니게 되었는데,

여러해가 지난후

어느날이였다.

마포 공덕동 대흥역 근처에는 지금은 없어진 유명한 합주연습실이 있다.

장스튜디오(Chang Studio)라는 연습실인데

악기대여및 공연용 합주실로 유명한 PTS나 SUN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프로뮤지션들이 공연연습을 위해 찾아오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합주실로,

암튼 거기에서 합주를 하기로 한 날이였다.

2008년쯤이였나?

연습전에 밥이나 먹자며 냉면을 먹자는 말에

나는 갑자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서울우유맛 나는 냉면이 생각나 바로 '콜'을 외쳤고

그렇게 우리가 간 곳은 평냉의 성지중 한곳인

이곳이였다.

https://ncms.nculture.org/story-of-our-hometown/story/6587

 

누구에게나 평냉의 첫맛은 그렇겠지만

나역시 그랬다.

이것은 행주삶은 물인가? 아니..그래도 고기향은 미세하게 나니까

고기를 삶고 있는 물에 실수로 들어갔다가 건져진 행주를 다시 삶은 물이겠구나..

어지간하면 음식을 안남기는 내가 반을 남겼더랬다.

옆에서 "응? 난 입맛에 맞는데?"라는 형님의 멘트는 가식이였으며,

"저도 먹을만 한것 같아요"라는 동생의 멘트는 구라였으리라..

그리고 1년뒤쯤..

평냉이 미식의 새로운 기준으로 뜨고있다라는 말을 들었을무렵,

나는 내가 갔던 곳이 그 유명한 을밀대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다시 방문할 자신은 없었다.

을밀대 티셔츠도 있다. 을밀대에서 판매하는 굿즈..는 당연히 아니고 그냥 팬심으로 만든 것들이다. 홍대랑 멀지 않아서 그런지 을밀대는 유독 뮤지션들이 좋아한다.

살얼음이 을밀대 평냉의 시그니처인데, 막상 매니아들은 살얼음을 뺀 '거냉'을 선호한다.( https://www.teamblind.com/kr/post/%EC%9D%84%EB%B0%80%EB%8C%80%EB%8A%94-%EB%8A%98-%EC%98%B3%EB%8B%A4-PoJ8EuU0 )

 

대신,

평냉의 짱(?)정도 되는 가게를 찾아가서 맛있으면 성공한것이고

맛없으면 다시 고향의 맛으로 돌아가면 되리라 생각하며

지금의 와이프와 결혼전

평냉의 짱(?)이라 불리는 우래옥을 방문했다.

https://www.foodbank.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772

 

결혼식 피로연장처럼 생긴 외관에서 이미 기대치가 깎였지만,

1년전 을밀대 사태(?)때와는 마음가짐이 사뭇 달랐으므로,

'니가 무슨 맛이 나던지 간에 난 너를 이해할꺼야'라는 긍정적인 바이브를 가지고

맛 본 우래옥의 육수맛에서는

'어랏!'

.그 정체모를 서울우유 병우유의 비린향이 났다.

물론

시큼하지도

달큰하지도 않은

이맛도 내맛도 아닌것 같은 슴슴함은 1년전 을밀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내 물냉면 인생의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새겨줄수 있을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름기있는 우래옥 물냉의 아름다운 자태

 

반년뒤 나는 지금의 와이프와 함께 LA로 유학을 갔다.

수중에 돈은 별로 없었고,

우유맛 냉면은 그렇게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

.

.

결혼해서 간 유학시절

외식은 사치였으며

그마저도 햄버거까지가 예산이 허락하는 최대치였으니

고깃집 냉면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첫 아이를 낳고서 문득...

.

냉면을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지만

LA는 알다시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나성구정도로

한국문화가 깊숙히 들어와 있는곳인데,

LA외곽지역의 가든그로브라는 한인거주자가 많은 도시에 처음왔을때

그 시대와 지역을 넘어선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브렌따노 남방을 입은 한 남학생이 한손에 뜨레쥬르 케잌 상자를 들고

서성이던 H마트 푸드코트의 그때 그 풍경..

순대국, 순두부(심지어 여기께 한국껏보다 맛있다.), 갈비, 삼겹살, 추어탕 등 없는게 없는

LA 한인타운의 식당가이지만

아쉬운게 있었으니

하나는 한국형 활어횟집이요

하나는 매니아들만 찾는 평양냉면집이였다.

물론 활어횟집이 있긴 있지만

비싸기도 하고 어종도 한국이랑 다르기도 하고...(물론 먹어보진 못했다.)

어쨌거나...

냉면을 먹고 싶은 날이었다.

한인타운엔 꽤 고급진 쇼핑몰이있는데,

CGV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물건너온 프랜차이즈들이 입점해있는 CGV LA인데,

영화관에서는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는 당연하고

영어가 서툰 한국인들을 위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들도 자막써비스까지 제공해주는 곳이다.

이 곳에

한국에서 물건너온 '한솔냉면'이 있었다.

물론,

우래옥의 그것과는 다른 맛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추억의 마포 주물럭 냉면을 생각하고

수줍게 문을 열었다.

한솔냉면이 있는 CGV몰

 

예상대로 냉면은 비쌌기때문에,

우린 물냉하나와 기본한식메뉴를 시켰고,

https://blog.naver.com/rkimjd/220605020188

 

물론 그 맛은 고기 삶은 물에 잘못 들어간 행주 삶은 물이 아니라,

시고

달고

하지만 적당한 육향도 살아있는 고깃집 냉면 맛이였다.

물론 맛있게 먹었다.

고마운 기억 중 하나는,

우리 가족은 수중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 빨리 먹었고 배가 덜 찬듯한 아들 내미가

옆테이블을 보면서 침을 꼴깍삼키고 있는걸 본 눈치빠른 웨이트리스분이

허락을 받은건지 몰래인지 암튼,

서비스 고기 몇점을 주셨다.

눈물나게 고마웠다.

언젠가 한국에 가면 제일 처음 방문할곳은 냉면집이여야만 했다.

그렇게 나의 평냉에 관한 관심은 약간은 집착으로 옮겨가는 중이였다.

..

.

2편으로 계속

LA 한솔냉면에 관한 블로그 : https://blog.naver.com/rkimjd/220605020188

 

LA(엘에이 맛집) Hansol Noodle 한솔냉면 - 코리아타운 CGV 마당몰에 위치한 냉면 전문집

물냉~ 좋아하시면 엘에이 코리아타운 한솔냉면 추천할게요~ 물냉면 맛난 데가 별로 없다며....ㅠㅠ 한숨 푹...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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