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클래식음악의 역사는 주로 독일-오스트리아권 작곡가들에 의해서 쓰여졌지만,
한국사람들의 정서에는 차이코프스키나 라흐마니노프같은 러시아권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유독 사랑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곡의 구조성과 논리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독일 작곡가들에 비해서
정서적이며 미학적인 측면이 더 강한 그들의 작품이 더 감성적으로 와닿기도 하며,
노래부르기 좋아하는 민족(?)답게 흥얼거리기 좋은 멜로디가 더 잘 들리는 러시아 작곡가들의 곡이 더 친숙해서 일수도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활동했던 20세기 초반은 후기 낭만주의를 지나서 인상주의나 무조주의로 향해 가는 시기였는데요,
12음 음렬주의 음악을 창시한 대표적인 현대음악 작곡가인 쇤베르크와 라흐마니노프는 동년배입니다.(오히려 라흐마니노프가 한 살 형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그와중에도 낭만주의 전통을 지킨 몇안되는 작곡가였습니다.
(물론 그래서 순수음악계에서의 평가는 매우 박한 편이긴 합니다.)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미학적인 관점에서라도 라흐마니노프나 차이코프스키 음악들을 많이 좋아하는 편입니다.
특히, 그의 교향곡 2번을 좋아하는 데요
그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곡조의 3악장을 들어보겠습니다.
바실리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오슬로 필하모닉의 노르웨이에서의 공연실황인데요
오케스트라의 솔로악기들과 악보의 음표들을 비교 감상해보시는 거도 좋을것 같습니다.
분석을 시작합니다.


셋잇단 음표의 순차진행으로 비올라가 연주를 시작하면,
제 1 바이올린이 익숙한 테마를 연주합니다.
여기서 주목할것은 1,2 바이올린의 리듬은 8th beat인데 이는,
비올라와의 박자가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poly rhythm(두 개이상의 pulse가 공존하는 리듬)인데요,
이런데서 곡이 평이하지 않게 입체감을 띄게 됩니다.

바이올린의 짧은 서주 뒤, A key 클라리넷이 다음 테마를 시작합니다.
밑에 바순은 이조악기가 아니라서 A key 조성으로 표기가 되어 있지만 클라리넷은 C키 표기입니다.
그 뜻은 클라리넷의 악보표기가 A와 C의 음정의 차이 즉,
단 3도만큼 차이가 난다는 뜻이며 클라리넷의 악보를 읽을때는 단 3도 낮춰서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악보의 첫음이 솔(G)이 아니라 미(E)가 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서정적인 솔로악기로 클라리넷을 좋아하는것 같은데요,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의 유명한 테마도 클라리넷이 연주합니다.
그런데 사실 클라리넷은 솔로악기로는 매우 불리한 악기중의 하나인데요,
오보에처럼 오케스트라 사이를 뚫고 나올정도의 존재감이 없을 뿐더러
플룻처럼 고음역을 연주할수도 없기 때문에 단지 은은한 느낌만 전달할수 밖에 없는데,
바로 그 점이 클라리넷의 매력입니다.
자기 주장 강하지 않은 사람의 은근한 자기 표현.
조곤 조곤 얘기하는 사람의 내적으로 충만한 카리스마같은게 클라리넷에겐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클라리넷은 Bb키를 더 많이 쓰는데, A조 클라리넷은 소리가 더 예쁘다고 하네요 비교해서 들어보지는 않아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럼 마저 클라리넷의 솔로연주를 들어보겠습니다.




클라리넷이 위의 테마를 연주하는 동안 바순과 호른이 잔잔하게 화음을 넣어줍니다.
행여라도 클라의 솔로를 잡아 먹으면 안되기 때문에 배려하며 연주해야 하고,
또 그걸 조율하는게 지휘자의 역할입니다.

클라리넷의 테마를 1 바이올린이 다시 받고, 2바이올린과 비올라는 화음을 넣어주는동안,
첼로가 비올라 대신 셋잇단 음표의 순차진행에 의한 대선을 연주합니다.
음악은 서서히 고조됩니다.


고조된 그 에너지 그대로 위 스코어의 첫번재 줄 3마디에 1,2바이올린이 처음 intro의 멜로디를 다시 연주합니다. 다른 악기들은 최선을 다해서 멜로디를 보좌합니다.
그리고는 1,2바이올린은 C키로 전조하며 16분 음표의 음계를 연주하며 다시 차분해집니다.


C장조 음계로 2테마를 연주하다가


목관이 받아서 짧은 패시지를 연주한후


정렬적으로 테마를 다시 반복합니다.




위의 마지막 4마디에 intro의 그 테마를 다시 재현시킵니다.
그리고는 트랜지션뒤,

호른과,

솔로 바이올린과


목관이 서주의 모티브를 차례로 나열합니다.
그 뒤로 다시 1테마와 처음 테마, 2테마가 서로 사이좋게 멜로디를 주고 받은뒤,
서주의 그 테마가 장중하게 마무리하며 3악장은 끝이 납니다.
곡의 구성이나 깊이감은 사실 말러에 비할바는 안되지만,
미학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말러의 교향곡 5번의 4악장에도 비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라흐마니노프 미안합니다. 제가 괜한 소릴 하는것도 같네요 ㅜㅜ)
스튜디오 녹음버젼도 올려놓습니다.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로열 필하모닉입니다.
.
여담인데요,
가장 많이 반복되었던 서주의 테마가 주된 멜로디였다고 할 수 있는데요
참고로 이 테마를 가지고 만든 올드팝이 한곡 있습니다.
https://youtu.be/y-a2BuF1yF4?t=38
처음 발표된 당시는 작곡가 표기가 에릭 칼멘 단독이였던걸로 알고 있었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지금은 라흐마니노프와 에릭 칼멘 공동작곡이라고 표기되어있는것 같네요
에릭 칼멘의 또 다른 히트곡 All By Myself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악장에서 부분을 따왔습니다.
라흐마니노프 빠라고 할수 있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