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흑인들의 관점에서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무언가 근사한 것을 만들어 낸 뒤 백인들이 따라 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지켜보던 백인 기획자들이 마케팅을 잘 해서 상품화시키는 과정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뉴올리언스에서 탄생하고 시카고를 거쳐 뉴욕에서 꽃을 피운 재즈는 프랭크 시내트라로 대표되는 크루너들에 의해 주류 팝뮤직에 편입되고,
블루스 음악을 커버하던 컨트리 뮤지션들에 의해 대중화된 리듬 앤 블루스는 곧 Rock'n Roll이라는 이름의 장르로 재탄생했습니다.

50년대에 들어서서 리듬앤 블루스와 같은 흑인 음악이 백인들에게도 알려지고 인기를 끌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데요, A Little Bird Told Me라는 노래와 관련된 소송 사건입니다.
1947년, 마이너 레이블인 Supreme Records에서 흑인 보컬인 Paula Watson이 부른 A Little Bird Told Me라는 노래가 빌보드 R&B차트(당시엔 흑인음악을 Race Records Chart로 불렸습니다. 약간의 인종적 비하의 뉘앙스가 있는 단어여서 후에 R&B로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2위에 오르고 pop chart에는 6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이듬해 이곡에 관심을 가지게 된 메이저 레코드사 Decca에서 백인 가수인 Evelyn Knight의 목소리로 커버한 싱글을 발표하는데, 이게 무려 빌보트 팝 차트 1위를 찍음과 동시에 21주 동안 차트 안에 머무는 초대박을 치게 됩니다.

원작자인 폴라 왓슨은 리듬 앤 블루스 특유의 흙빛이 도는 끈적끈적함 같은 느낌이 있는데, 에블린 나이츠의 커버 버젼은 정제된 듯 듣기 더 깔끔한 맛이 있습니다.
강의시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거수를 한 결과, 에블린 나이츠가 선호도가 더 높았었네요
이 곡을 처음 취입한 슈프림 레코드는 데카 레코드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와 관련해서 고소를 하지만, 법원에서 소송이 기각되어 버립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저작권과 관련한 상세한 법안이 마련되기 전이였는데,
이 판결로 인해서 작곡자의 저작권은 인정이 되지만 원곡을 부른 가수나 편곡자에게는 따로 허가를 받을 필요가 사실상 없게 되어버립니다.
커버 버젼이 득세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버린 거죠.
막상 작곡가인 Harvey Brooks 입장에서는 오히려 Paula Watson과 Evelyn Knight의 싱글로부터 각각 저작권료를 챙길 수가 있으니 손해가 아닌 이득인 셈이었습니다만,
원곡자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일일뿐더러 곡의 오리지널리티를 빼앗기는 셈이 된 것입니다.
아무튼 간에, 이 이후로 메이져 레코드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모험을 할 필요 없이 마이너 레코드사의 노래중에서 반응이 괜찮은 곡들을 기다렸다가 편곡만 좀 손대서 발표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게 되고, 이러한 방식은 경제적으로도 훨씬 이득이기에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게 됩니다.
A Little Bird Told Me의 판결 이후,
유명한 커버 버젼의 사례로는 Big Joe Turner가 원곡인 Shake, Rattle & Roll을 들 수 있습니다.
Jesse Stone이 작곡한 이 곡은 54년 2월 아틀랜틱 레코드에서 빅 조 터너의 목소리로 발표되어
빌보드 R&B차트에서 1위를 하고, 싱글 차트에서는 22위까지 올라갔습니다.
Jazzy한 셔플 리듬의 곡으로 흑인 음악 특유의 분위기와 그루브가 느껴지는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JoTiZ0tHYc&ab_channel=BigJoeTurner-Topic
돈 냄새를 맡은 데카 레코드(또 데카입니다)는 Bill Haley & His Comets의 버젼으로 불과 다섯 달밖에 지나지 않은 같은 해 7월에 재빨리 편곡만 바꿔서 커버 버전을 내놓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9lGMHCgiAM&ab_channel=BillHaley-Topic
그리고, 이 노래는 빌보드 싱글차트(가장 메인스트림인 팝차트)에 1위를 찍지는 못했지만, top 40에 27주나 머무는 장기집권을 하며 원곡을 뛰어넘는 히트를 기록합니다. (이듬해에 엘비스 프레슬리도 자신의 데모에 이 노래를 싣습니다.)
빌 헤일리의 커버 버전은 반주 파트에 색소폰 대신 기타를 넣어서 원곡의 둥글둥글한 느낌 대신 강하고 직선적인 느낌이 들게 했으며, 가사도 성적인 암시가 많은 단어로 바꿔 버립니다.
빌 헤일리는 이 곡으로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지금까지 최초의 로큰롤 스타로 여겨지게 됩니다만, 원곡자인 빅 조 터너는 흑인 음악 시장에서의 한계를 못 벗어나고 하향세를 그리게 됩니다.
빌 헤일리와 그의 밴드는 이미 같은 해에도 12마디 블루스인 Rock Around the Clock를 불렀는데 이 곡이 영화 ‘폭력교실’에 삽입되면서 컨츄리 밴드가 일렉기타, 베이스, 드럼 편성의 열두 마디 블루스를 연주해서 성공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으며 이는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gdufzXvjqw&ab_channel=33Evenstar
재주는 흑인 뮤지션이 부리고 돈은 백인 뮤지션과 제작자가 가져가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사실 이러한 흐름은 리듬 앤 블루스 뮤지션들에게는 메인스트림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50년대 중반이후 빌 헤일리, 엘비스 프레슬리나 버디홀리같은 백인 스타들 뿐만 아니라 척 베리나 리틀 리처드같은 흑인 리듬 앤 블루스 뮤지션들도 흑인 음악 시장에서 벗어나 백인 뮤지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컨트리가 혼합된 백인 취향의 리듬 앤 블루스가 흑인 리스너들에게는 외면받게 되면서 로큰롤이란 이름으로 재탄생한 이 당시의 리듬앤 블루스는 곧 백인들만의 전유물이 되어 버리고,
흑인 뮤지션들은 좀 더 deep한 Soul음악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지금의 R&B란 장르는 이때의 리듬앤 블루스와 결이 다른 말하자면 흑인 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를 망라하는 그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모호한 카테고리가 되어 버렸습니다만,
4~50년대의 리듬앤 블루스는 말하자면 rock음악을 탄생시킨 흑인 음악이었던 셈이죠.
그렇기 때문에 60년대의 비틀즈나 롤링스톤즈도, 70년대의 레드제플린도, 80년대의 반 헤일런이나 건스 앤 로지스도 그들이 하는 음악의 본류인 블루스에 대한 리스펙을 변함없이 보여주고는 했습니다.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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