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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여행/영화음악 이야기

[영화음악] 리뷰 및 분석 - 오펜하이머, 분열하고 융합하다 폭발하는 Score

by 방구석 딴따라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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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의 음악에 대한 리뷰입니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한스 짐머는 이번에도 드니 빌뇌브 감독과의 작업으로 인해 함께 하지 못했고, 테넷 작업 때 한스짐머가 추천했던 루드비히 고란손(Ludwig Göransson- 예란손이 맞는것 같은데 이미 많은 매체에서 '고란손'으로 쓰고 있어서 그대로 씁니다.)이 다시 맡았는데요,

두 번 연속이나 뺀찌를 놓게 되면 놀란 감독 입장으로서는 서운할 만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루드비히 고란손 음악의 퀄리티가 좋기 때문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도가 큰 편이기도 하고

한스 짐머의 음악은 기능성이 뛰어난 대신에 예술적 창의성은 떨어진다고 보는 입장인지라 - 한스짐머의 팬분들께는 양해 부탁드립니다. - 아쉬운 부분은 없습니다.

일각에선,

음악이 너무 과하고,

또 너무 많이 나온다는 평도 있는것 같은데

스코어의 분량이나 spot을 선택하는건 작곡가보다는 감독의 선택이 더 크기때문에

오히려 고란손은 놀란 감독의 뜻에 따라 120%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야 맞습니다.

오펜하이머의 스코어는 현악기 위주의 오케스트라에 일렉트로닉 음악을 적절하게 믹스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반젤리스가 떠오르는 80년대 레트로 스타일의 신시사이저 사운드도 있었고,

사운드 디자인에 가까운 엠비언트 음악들도 있었지만

귀에 잘 들어오는 음악은 고음역의 바이올린 앙상블 혹은 바이올린 솔로 연주가 들어간 현악 앙상블이었는데,

긴장 상황, 갈등 상황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용도로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글을 작성하면서 음악을 유심히 들어보았는데,

영화의 테마를 반영하듯

분열과 융합을 상징하는 스코어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원자핵이 분열을 하듯 음표들이 쪼개지고

또 핵융합을 하듯 흩어졌던 음들이 합쳐지는 식의 연출이 있는데

높은 확률로 의도된 작곡이라고 보입니다.

유투브에 올려져 있는 사운드트랙만 듣고 어떤 장면에 나왔는지 떠올리기가 쉽지는 않지만,

일단 기억에 따라 몇 개의 스코어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오프닝 시퀀스에 나오는 음악인데,

1분 57초쯤부터 바이올린 파트가 글리산도로 음과 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연주하면서 사이렌 같은 느낌을 주는데, 작곡가는 비슷한 음역대에 트랙을 여러 개를 써서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입체적인 느낌을 주게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다시 사운드적인 효과를 위해 filtering을 하거나 synthesizer를 썼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인위적인 느낌의 트랙을 입혀서 다층적인 효과를 줍니다.

현대음악에서는 반음과 반음 사이를 더 쪼개서 다양한 pitch를 표현하는 것을 microtonal이라고 하고,

악보에 정확한 notation(음표 표기) 대신 그림 같은 기호로 적어서 연주자로 하여금 random 한 연주를 하게 하는 것을 graphic score라고 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다 조금씩 반영이 된 거라 새로운 기법은 아닙니다.

다만, 영화 음악에서는 이러한 기법들을 사운드적으로, 그리고 연출적으로 얼마나 훌륭하게 표현해 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

영화 오펜하이머의 언더 스코어들은 이러한 점에서 꽤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트랙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미세한 음들이Eb 음으로 합쳐지는 순간(2분 18초 정도)이 있는데,

마치 분열되어 있었던 원소들이 융합하듯

핵분열과 핵융합을 음악으로 표현한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구간입니다.

(놀란 감독과 작곡가 고란슨이 이러한 디테일까지도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면 소름일 것 같습니다!!)

사운드트랙에 이러한 사이렌 같은 사운드는 여러번 등장합니다.

https://youtu.be/jUUm2H88zkk?list=PLnoIi4YKKKd-eZ0JRbOgDoaG-oCOhm7op&t=16

 

사이렌 같은 현악기의 글리산도가 끝나고 나면,

묵직한 synthesizer의 공간을 많이 활용한 ambient music이 등장합니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음악입니다.

여기서도 사이렌 같은 효과가 다시 등장합니다. 밑의 링크의 4분정도부터 입니다.

https://youtu.be/9XCx73RhqXw?list=PLnoIi4YKKKd-eZ0JRbOgDoaG-oCOhm7op&t=243

 

대신에 오프닝시퀀스의 음악처럼 정적이지 않고

아르페지오를 활용한 리듬적인 패턴위에 이질적으로 만나며,

마치 핵분열하듯 잘개 쪼갠 리듬과 미세하게 안맞는 음정들이 서로 어긋나면서

웅장한 오케스트라 소스와 함께 핵폭발하듯 끝을 향해 달리는 음악입니다.

글리산도주법과 여러개의 레이어를 써서 다층적인 사이렌같은 효과를 주는 음악은

한스짐머도 자주 쓰는 방법입니다.

다크나이트에서는 현악기가 장2도로 계속해서 상승하는 듯한 느낌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PCKWU0II8&list=PLA0EB49C4E7626AC9&ab_channel=BmSt32

 

이러한 유사점은 고란슨이 한스 짐머에게서 어느정도는 영향을 받았음을 추측할수 있는 부분입니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장면일텐데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음악이 재미있어서 채보해봤는데 생각보다 박자와 템포가 복잡해서 고생했습니다;;

B, C, D, F#, G, E 단 6개의 음만 사용하는 hexachord입니다.

음의 배열은 바뀌지 않고 차례대로 한 칸 씩 상승합니다.


템포가 1.5배 빨라지면서 하강하는데, 사실은 템포가 변하는게 아니라 원래 템포에서 박을 쪼갠 poly rhythm입니다만, 악보 표기상 템포가 바뀌는 걸로 표기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박자가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아서 템포를 측정해 봤더니 대략 저런 식으로 나왔습니다.

작곡가는 템포를 올리는 식으로 곡의 비트에 속도를 내는데요,

리스너 입장에서는 익숙한 6개의 노트가 점점 속도를 내며 잘게 쪼개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우라늄 원자의 핵이 분열하는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은데,

이것도 의도된 연출로도 보입니다.


 
 

이 두 곡의 공통점은 감정을 고조시키는 역할로 솔로 바이올린을 썼다는 점입니다.

레트로적인 신스 사운드와 현악 오케스트라의 배경 위에 솔로 바이올린이 계속해서 감정선을 건드리는 식의 연출을 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던 음악입니다.

실험용으로 제작한 트리니티 핵폭탄을 시연할 때 나오는 음악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Ayob6tTAUM&list=PLDisKgcnAC4QJDGcv7BafiO3tqpRYrTXe&index=16&ab_channel=OriginalSoundtrack

 

처음부터 3연음으로 질주하며, 레이어가 쌓여가고

웅장한 신스 베이스 위에 다양한 악기가 등장하는 미니멀리즘 기법입니다.

스코어를 만들 때 관객의 주목을 끄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레이어를 많이 쌓으면서 빌드업을 하며 크레센도로 달리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딱! 멈추는 겁니다.

쉴 새 없이 고막을 괴롭혔던 불협화음이 어느 순간 일제히 사라지게 되면 관객도 같이 숨을 죽이며 영상에 몰입하게 되는데요,

카운트 다운이 들어가고 폭탄이 터지는 클라이맥스에서 음악을 포함한 모든 사운드가 사라집니다.

위의 음악링크에서는 대략,

5분 13초부터 시작해서 5분 26초에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3초후에 바이올린부터 스며들듯이 다시 나오는데

제 기억으론 음악이 안나오는 부분이 훨씬 길었습니다.

영화에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숨소리부터 들리면서 음악은 한 참 지나서야 다시 나옵니다.


음악이 아닌 음향으로 긴장감을 주는 씬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뒷 장면에 연설을 위해 오펜하이머가 등장할때 사람들이 발을 구르는 음향인데요,

그 음향을 복선처럼 여러 번 반복해서 쓰는데 일종의 암시나 최면처럼 나옵니다.

'발구르기'음향을 못찾았지만 음악의 뒷부분에 섞여서 나오는 건 있습니다.

2분 6초정도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QhKZIUoOio

 

발구르기 소리가 점점 커지고 텀도 빨라지면서 음악과 함께 빌드업되는데,

극중에선 음악 없이 단독으로도 여러번 쓰입니다.

사운드트랙에 없는걸로 봐서는 작곡가의 아이디어가 아닌

감독의 아이디어를 음향팀이 잘 만들어서 넣은걸로 추정합니다.

음악보다도 이 발걸음소리가 영화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sign처럼 중요한 역할을 해냅니다.


전체적인 평을 하자면,

1. 음악이 너무 많이 나오긴 합니다.

음악이 안 나오는 장면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나오지만,

대사와 심하게 부딪히지는 않는 게

중요한 대사가 나올 때는 말소리의 프리퀀시 대역을 비운 고음역과 저음역 위주로 스코어를 만들었기 때문인데요

대신에 귀가 피곤한 감은 있습니다.

감독의 전작들인 다크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영상으로 압도하는 영화가 아닌

드라마라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음악을 과도하게 쓴 것 같긴 한데요

만약 한스 짐머라면 감독과 잘 타협해서 필요한 부분만 음악을 넣고 빠지는 식으로 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드라마라는 것을 감안하면

긴장감을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음악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걸지도 모릅니다.

2. 법정씬,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다큐적인 드라마라는 점에서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네트워크'가 겹쳐보이기도 했습니다.

데이빗 핀처는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테크니션이지만 테크닉이 잘 드러나지 않는

건조한 느낌이 들게 연출을 했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컷을 엄청나게 많이 쓰고 음악과 사운드가 과잉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화려하게 연출을 했습니다.

핀처의 스타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3. 음악과 음향과 편집과 조명의 색감, 모두 섬세한 연출이 들어간 웰메이드 영화인것은 확실합니다.

기회가 되면 기꺼이 재관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P.S: 오펜하이머의 애인 진 태트록 역을 맡은 이 배우가 무척 매력적으로 나왔는데

https://www.unilad.com/film-and-tv/news/oppenheimer-woman-husband-look-away-florence-pugh-134368-20230821

 

알고 봤더니 미드소마의 여주인 플로렌스 휴였네요

같이 영화를 봤던 광고PD출신의 지인이 의도적으로 붉은색감을 써서 관능적으로 보이게 끔 한것 같다고 했는데,

밑의 사진을 보니 맞는것 같습니다.(굉장히 하얕네요..)

아무튼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에 감탄했습니다^^

이상 영화 오펜하이머의 사운드트랙에 대한 리뷰를 마칩니다.

출처 imdb

​이 리뷰는 작년에 작성했었는데, 호불호가 갈릴듯했던 고란슨의 음악은 영화의 호평만큼이나 수상실적도 좋아서

골든글로브와 오스카상을 연이어 수상했네요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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