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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여행/영화음악 이야기

[영화음악] 영화 로마, 소음의 미학

by 방구석 딴따라 2024.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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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은 영화를 위한 음악입니다.

분할된 숏과 숏을 하나로 연결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며,

최종적으로 감독의 연출을 도와주는 것에 있기 때문에 결국,

영화음악의 미덕은

영화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지,

그 자신이 돋보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래서,

완성된 음악을 영상과 함께 모니터링할 때 감독에게 듣는 최고의 찬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집중해서 보느라 음악이 있는지도 몰랐어요"입니다.

영상과 일체감이 된 음악이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생각보다 영화에 음악은 많이 들어가는 편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기준으로 과거보다 현재로 갈수록 영화의 러닝타임당 음악이 들어가는 시간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예를 들자면,

로저 미클로시의 장중한 음악으로 기억되는 벤허는 전체 러닝타임당 약 50퍼센트,

제리 골드스미스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은 약 30퍼센트 정도인데 비하여

픽사 애니메이션의 대표작, 마이클 지아치노가 만든 UP의 스코어는 전체 분량의 70퍼센트

존 파월의 드래곤 길들이기같은 영화는 75퍼센트에 달합니다.

물론, 애니메이션 영화가 실사영화에 비해 음악의 활용도가 높은 것도 이유가 있겠지만,

컷의 분할이 많고 속도감이 빠른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여부를 떠나서

음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건 사실입니다.

얼마 전 감상했던 영화 오펜하이머도 체감상으로는 7~80퍼센트 정도가 아닐까 느껴졌을 정도로 언더스코어의 활용빈도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언급했듯이,

영화음악은 영화를 위해서만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감독이 생각하기에

배경음악의 도움이 필요가 없거나 오히려,

감독의 연출에 방해가 된다면 그 음악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로마는 배경음악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영화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non-digetic music,

감상을 하는 관객을 위해 따로 만들어진 스코어가 존재하지 않는 영화입니다. 대신,

극중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안에서 배우들이 듣고 있는 digetic music은 여기저기서 다양한 사운드로 존재합니다.

 
 

엔딩크레딧에 영화를 위해 쓰인 음악의 목록이 나오는데,

막상 우리는 이런 음악들을 들은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독은 이러한 음악들을 엠비언스(ambience:해당 공간의 사운드 - 화이트 노이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에 녹여내서 철저한 배경으로만 취급했기 때문인데요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 초반의 멕시코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음악들을

뮤직 슈퍼바이저(이 영화에는 오리지널 스코어가 없기 때문에 크레딧에 작곡가의 명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와 상의하에 골라서 넣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주된 배경인 소피아의 저택에서 들리는 음악은

라디오나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소리이거나,

길거리에서 울리는 음악들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생활소음들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XOFLuU1gXU&list=PLDisKgcnAC4QLhNkaFLqRrMeaVktAMf88&index=8&ab_channel=OriginalSoundtrack

 

오리지널 스코어는 없지만 사운드트랙은 있습니다. 영화에 쓰였던 음악중 하나입니다.

음악감독은 존재하지 않지만 대신 감독은,

1970년 초반 당시의 멕시코를 청각만으로도 느낄 수 있도록 사운드에 많은 공을 들였고 실제로 음향 파트에 인력이 꽤 많이 투입이 되었습니다.

옥상에서 막내 페페와 함께 시체놀이를 하듯 누워있을때 들리는 이웃집 개짖는 소리, 옆집에서 들리는 라디오 소리들

개똥때문에 항상 신경쓰이는 1층 마당을 청소할때의 빗질소리

지하에서 원주민들끼리 모여 즐기는 파티장에서의 노랫소리등, 영화 로마를 집중해서 보신분들은 각각의 스틸컷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생활소음들을 떠올리실거라 생각합니다.

동시녹음이 아닌 후시녹음으로 만든 대사 트랙을 처음 들으면 어색하기 그지없는데요

왜냐하면 스튜디오에서 배우들의 목소리만 딴 트랙에는 엠비언스(생활소음)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경의 소음들은 나중에 추가로 넣어서 대사나 다른 음향효과들과 믹스를 하게 되는데

따라서,

우리가 보는 영화의 배경소음들은 대부분 가짜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당시 현장에서 마이크로 수음한 소음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든 엠비언스를 나중에 그럴싸하게 대사트랙과 섞은 것이기 때문이고

오히려 그렇게 해야 더 실제 같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문 닫는 소리, 방문 여닫는 소리, 길거리에서 들리는 각종 소음들,

차 소리, 새소리, 사람들 말소리 등

전부 음향감독(음악감독과 다른 역할을 하는)이 공들여서 만든 Sound Design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영화 로마에서는

감독이 배경음악을 안 넣은 대신 공들여 만든 생활 소음들이 오디오를 가득 채웁니다.


영화 속 신파적인 연출에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들이 많습니다.

울고 싶지 않은데,

배우들의 눈물 연기와 감정에 호소하는 음악 때문에

억지 울음이 나온다는 건데요

최소한 이 영화에서만큼은

감정선을 끌어올리기 위한 배경음악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극중 캐릭터와 자연스러운 '관계 맺음'이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밑줄부터 영화의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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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관계 맺음'때문에

뱃속 아기의 아빠인 남자에게

버림 받고 모욕 받고 심지어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떠안으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던 클레오가

분만실에서 죽은 아기의 사체를 끌어안고 오열할때야 비로소

관객들도 기꺼이 분노하며 함께 울어주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구요

수영을 못해서 물에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클레오가

자기 키보다 더 높은 파도를 뚫고 아이들을 구하러 가는 장면,

소피아의 가족들과 포옹하며

아기를 낳고 싶지 않았다며 고해성사하듯 흐느끼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감정은 매우 자연스럽게 고조가 되고

관객들은 음악의 도움없이 진정성있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것 같습니다.


보통,

음악을 극단적으로 적게 쓰는 영화라 할지라도

엔딩 크레딧에서 만큼은 감독의 취향에 따른 음악 한두 곡 정도는 나오기 마련인데요

이 영화는

아예 엠비언스조차 집어넣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관객은 감정의 여운을 오롯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느끼며

오디오의 여백에 자신만의 음악을 상상하듯 넣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진한 여운이 남는 엔딩이었습니다.

P.S: 영화 로마에서 영감을 받은 음악들(Music Inspired by the Film Roma)이라고 빌리 아일리시, 벡 등이 참여하여 제작한 음반이 따로 있는데요

따로 들어보고 싶은 생각은 안 드네요 아니,

오히려 일부러 라도 듣지 않고 싶습니다.

영화 로마 하면 떠오르는 생활 소음의 미학이 사라지고 엉뚱한 음악이 채워지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오리지널 스코어는 없지만 사운드트랙은 있습니다.

1970년도 멕시코에서 유행했던 음악들을 모아놓은 트랙들입니다.

그중에 한 곡을 마지막으로 올려놓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ooUxNY3vf0&list=PLDisKgcnAC4QLhNkaFLqRrMeaVktAMf88&index=16&ab_channel=OriginalSoundtrack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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